나에게 쓰는 유언장, 그리고 기업윤리와 직업윤리 사이

howliveyou

정치인 유시민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나 역시 그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다소 혼란스럽다. 하지만 ‘글쟁이’ 유시민에 대해서라면 비교적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매우’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글 쓰는 스타일을 닮고 싶은 이가 단 두 명인데 한 명은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또다른 한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다.  

그들의 글을 간결하다. 그리고 단문이다. ‘단문’으로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글을 써 본 사람만 안다. 주제와 논리가 명확할 때만이 단순한 구조의 글이 나온다. 자신감이 없거나 문장력이 달릴 때 글을 길어지고 중언부언 앞뒤로 수식어가 붙는다. 더구나 이들의 글은 쉬운 용어를 사용하고 상황이나 정황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읽는 이로 하여금 상황에 빠져들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부분 소설이 그렇고 유시민의 대부분의 저작, 특히 <운명이다>(2010년, 돌베게)가 그랬다.  

그런 유시민이 정계은퇴와 함께 글쟁이 복귀를 선언한 이후 처음 내놓은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2013년, 아포리아)이다. 의외로 매우 개인적인 성격의 책이다. 이제 50대 중반에 접어든 그가 새로운 삶의 즐거운과 의미를 어떻게 찾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 크라잉넛이 같은 제목으로 내놓은 책과 그들의 삶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해 책 전반에 걸쳐 열정과 공유, 연대를 강조한다. 이번 대선에 대한 후일담 성격의 위로와 통진당 부정투표 논란에 대한 견해, 혼전동거와 제사거부와 같은 민감한 주제도 공격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일하는 것과 노는 것에 대한 철학이다. 놀면서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으라며 그 자신도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정치인 은퇴’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잘하는 것, 즐기는 것이 글쓰기라며 이를 이용한 생각의 공유와 연대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썼다.

사실 나는 비교적 하고 싶은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다고 생각해 왔다.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일. 그래서 대학 전공과 무관하게 꽤 노력해서 이 길을 택했고 지금까지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10여년 이 영역에 있다 보니 많은 선배들이 했던 그런 고민들을 나도 해야 할 시점이 됐다. 경력이 짧았을 때는 눈앞에 닥친 내 일만 하기에 바빴고 좀더 경력이 쌓이자 요령도 생기고 가치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다. 모든 일이 그렇듯 가치관은 결국 내가 하는 일의 결과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나 글을 쓰는 일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조금 더 경력이 쌓이면 숫자에 대한 압박이 시작된다. 아마도 연봉이 오르는만큼 그만큼의 부담이 주어지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 때부터 두가지 가치관이 부딪힐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윤리와 직업윤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윤리의 제1 가치는 수익을 내는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가치가 없다. 그것이 주주를 위한 것이든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한 것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업 구성원들에게 가치관에 반하는, 혹은 부끄러운 일을 하도록 강요할 가능성이 있다. 저질 음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가맹점에 공급하게 한다거나 같은 직원인 노조원을 감시하게 하고 협력자인 가맹점주들에게 유통기한이 다되가는 제품을 ‘밀어내기’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기업의 이윤을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기업윤리로는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개인의 가치관이 반영된 직업윤리에는 반하는 것일 수 있다. 직업윤리는 단순히 직장생활을 시키는대로 열심히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쓰레기 재료로는 음식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 생산직원의 윤리이고 불법으로 같은 직원의 뒤를 밟는 감시활동은 인사부 직원의 직업윤리에 반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상관의 지시에 따라 야당을 비방하는 댓글을 충실히 작성하는 것은 조직윤리로는 가능하겠지만 음지에서 국민의 안위를 보호하는 국정원 직원 직업윤리에는 반하는 것이다.

기업윤리와 직업윤리를 동일시하며 시키는대로 열심히 하는 것의 가장 큰 폐해는 언론이다. 협찬을 위해 공격성 기사를 쓰고 마음에도 없는(설마 진심은 아니겠지) 기자수첩을 쓴다. 물론 일개 개인이 조직에 저항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거나 어렵게 얻은 주류 자리에서 마이너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싸질러놓은 흔적들은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대대손손 남아 있다. 어쩌면 기사를 쓴 당사자가 죽고 나서도 그 자식들이 보고 부끄러워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기자로 사는 것은 어렵다. 대접받는 만큼 스스로 짊어져야 할 무게가 엄중하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언론환경이 이렇게 척박해진 데는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까라면 까야지’ 식의 기업윤리 뒤에 숨어서 기자 본연의 직업윤리를 포기한 기자 개개인의 패배의식 혹은 자포자기가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reporter
기자에 대한 냉소가 커지는 것은 기자들 스스로의 패배의식이 주원인인 것 같다.

또 하나 이 책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죽음’의 정서다.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지만 매우 구체적으로 죽음을 사유한 흔적이 담겨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면했던 태도와 사건, 방식을 인용하면서 죽음과 그에 근접해 가는 방식과 태도를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그것을 통해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을 수 있다는 조언이다. 특히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 : 현명하게 지구를 떠나는 방법’ 부분에서는 재활용 가능한 장기는 기증하고 화장할 것, 제사를 지내지 말 것 (대신 그 시간에 가족들이 모여 추억을 이야기해라), 사전 장례식 같은 컨셉으로 죽음을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것, 죽기전에 재산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리해 둘 것 등 일종의 유언장처럼 정리했다.

그가 정치인에서 은퇴하고 글쟁이로 다시 돌아온 것은 어쩌면 일종의 패배일 수도 있다. 패배를 극복하면서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각종 과학서적을 통해 위로(?)를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대부분 극복해 내고 자신의 삶의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책 전반에 걸쳐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고민하고, 여전히 방황하는 자존심 강한 사람은 절대 죽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건 일종의 투정이고 스스로에 대한 굴복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는 것이다. 놀이처럼 일하는 즐거움 찾고 뜨겁게 사랑하고 생각하는 바를 사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표현하라는 의미이다. 그는 책 속에서 직업 정치인으로 산 10년이 (의외로) ‘나답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그를 대중에게 가장 확실하게 각인시킨 시기였는데 오히려 그런 것이 스스로에게 족쇄가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유시민이 스스로에게 쓰는 유언장 형식을 빌린, 이제 ‘내 멋대로 살겠다’는 선언서다. ‘나도 이렇게 살꺼니 당신도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보라’는 충고다. 하지만 가슴 답답한 현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생각이 다른 이를 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51%와 49%.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세대든 지역이든 이념이든) 차이는 분노와 체념, 세상에 대한 벽을 쌓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유시민의 대답은 ‘역사는 절대 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진보의 거듭되는 패배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선의 패배나 악의 승리가 아니다. 진화적으로 익숙한 것(책에서는 이것을 보수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이 새로운 것을 이긴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지만 그는 전두환처럼 할 수 없었다. 1992년 보수진영으로 투항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지만 그는 전임자보다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치를 했다. 2007년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를 개인적 ‘수익모델’로 만들었지만 민주주의 정치체제 그 자체까지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지만 그의 정책 공약은 5년 전 낙선했던 진보진영 대통령 후보보다 더 진보적이었다.
 
진보세력은 선거에 졌을 뿐 역사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옳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유언장을 미리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부채보다 자산이 많은 것 같으니 이에 대한 처분 방식, 장기 기증, 제사를 지내지 말 것,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등은 책의 내용에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사실은 구체적인 내용보다 죽음을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고민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현재의 즐거움도 다시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일주일에 4번. 아침 시간에 다니는 영어학원. 비교적 스트레스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 음악과 영화, 책 그리고 가끔은 게임도 즐길 수 있는 여유 시간을 갖고 있는 것 등은 감사하고 고마운 일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유시민처럼 모든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 여전히 TV 뉴스는 멀리하고 있고 정치 관련 기사 속 이름들은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운명이다>를 읽을 때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는 힐링류 서적을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힐링의 힘이 있는 책이다. ‘글쟁이’ 유시민의 다음 책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